주드 | 러브 타부
사랑도 금물
함부로 빠져들지는 마
먼저 해본 사람의 말이
자유 없는 재미없는 삶을 살거나
죽을 만큼 괴로울지도 몰라*
사랑은 금물!
김원필 박제형
왜 이 남자 옆에 누워있니. 제형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만 살짝 돌려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노골적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속눈썹 그리고 감겨있는 눈까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자꾸 보다보니 생각이 많아져 제형은 침대 밑에 어질러져 있는 옷을 주우려 허리를 굽혔다. 굽히자마자 밀려오는 통증에 허리를 짚었다. 몸에 힘이 빠져 도로 누웠다가 오전 8시를 알리는 시계를 보고 다시 일어났다. 제인이 등원시켜야 되는데.. 주운 티셔츠를 입은 제형이 아차 싶었는지 자고 있는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김원필 일어나 출근 안 함?”
“....어... 지금 몇신데여”
“여덟시.”
“아... 여덟시... 여덟시?”
말하기가 무섭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 원필은 헐벗은 몸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떨어진 옷을 주울 생각도 않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제형은 원필의 작고 왜소한 등을 보다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술김에 저지른 일이면 소리라도 지르고 욕이라도 하지 지난 밤 제형과 원필은 너무나 제정신이었다. 원필을 알게 되면서 이어진 기묘한 날들 중에 하나였다. 퇴근한 원필과 밥을 먹다 맥주 한잔 하자며 원필의 집에 왔고 맥주 한 캔을 마시기도 전에 키스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원필과 있으면 항상 예측불가였다. 제형에게 원필은 그런 사람이었다.
거울을 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옷을 챙겨 입은 제형이 물소리가 나는 화장실 문을 두어번 두드렸다. 엉? 원필의 콧소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갈게. 네엥. 놀라울 정도로 싱거운 대화를 끝으로 제형은 원필의 집에서 나왔다. 어차피 이따 볼 거니까. 제형은 제 집으로 돌아가는 짧은 찰나에 김원필과 나는 대체 뭘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동네에서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가리까다가 키스하고 자는 사이. 이게 무슨 사인데? 그리고 이 이상한 관계의 시작은 대체 뭐였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원필이었다. 김원필... 망할 김원필 선생님.
생각을 길게 할 틈도 없이 제형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가니 등원 준비를 마친 제인이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제인과 손을 꼭 잡은 제형은 현관문을 닫고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종알종알 오늘 입은 옷부터 아침밥 뭐먹었는지 유치원가서 누구랑 놀 건지 떠드는 제인에게 대꾸를 한참 해주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제형은 제인을 안아 들었다.
“오빠 오늘 좀 피곤해.”
실눈을 뜨면서 제인과 코를 맞춘 제형이 하품을 쩍하며 말했다. 왜 피곤해? 항상 호기심 많을 6살답게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하는 제인에 제형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뭐라고 말해야하지, 너네 반 김원필 선생님이랑 자다가 왔다고 할 수는 없잖아. 제형은 결국 친구와 놀다왔다고 둘러댔지만 싱글벙글 웃는 원필이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괜히 찜찜해졌다. 제인은 제형의 품에 안겨 쉴새 없이 혼잣말을 하다 흥미가 떨어졌는지 이내 입을 다 물었다. 오빠 나 내려줘. 제형은 내려주자마자 유치원으로 뛰어가는 제인을 졸졸 따라가다 문 앞에 서 있는 원필을 발견하고 잠시 주춤했다. 제형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필은 제형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제인은 쪼르르 원필 앞에 가 서더니 몸을 반 접으며 배꼽인사를 했다.
“선샌님 안녕하심니까.”
“제인이 안녕하십니까.”
제인과 똑같이 인사를 한 원필은 제인의 손을 잡아 유치원 안으로 들여보내며 제형에게 찡긋 눈인사를 했다. 뻐끔뻐끔 입모양으로 형안뇽하는 원필에게 제형은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쟤는 속도 좋아. 원필은 1시간 전에 일어난 사람치고 멀끔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고 제형은 아침에 일어난 상태 그대로였다. 괜히 머리를 매만지던 제형은 아이들과 인사하는 원필을 계속 주시했다. 왱? 하는 얄미운 입. 오늘도같이밥먹을까? 뻐끔뻐끔. 김원필 특유의 개구진 표정.
“생각해보고.”
이 말만 남기고 제형은 돌아섰다. 귀여워 보이는게 짜증이나 발에 힘을 가득주고 걸었다. 김원필 짜증나는 김원필 같이 밥먹자며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말을 하는 김원필. 이상해. 이상하잖아. 이상한 사인데.. 왜 평범하게 말하는 거야. 정상 아니잖아. 원필 쌤을 원필로 부르기 시작한 그때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제형은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머리를 잔뜩 헝클었다. 평범한 오해를 하던 김원필. 바보 같은 김원필. 그래서 나는 이 바보랑 뭘 하고 있는 건데. 제형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한참을 중얼거렸다.
김원필이 평범한 오해를 확인하던 그 날. 제형은 그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원필이 제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날이라는 거 밖에는. 하지만 원필은 그 날을 잊을 수 없었다. 제형은 순진하게도 까마득히 몰랐다. 그 전부터 원필이 제형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제인이 아버님 진짜 아니시죠?”
“네? 오빠예요.”
“아 그러시구낭. 홍홍”
원필이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학부모에게도 숱하게 들어온 소리라 제형은 시큰둥했다. 그때마다 오빠라고 해명하기도 지겨웠다. 제인이는 저랑 스물세 살 차이나는 늦둥이 여동생이고 엄마랑 아빠는 아침 일찍 회사 가셔서 제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와요. 저는 귀국한지 얼마 안됐고 아직 취준생이라 시간 많거든요. 재생 누르면 줄줄 나오는 말들이었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제형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개백수였고 그나마 하는 일이 제인을 유치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이었던 것이다. 제형은 K오지랖을 뼈저리게 느끼며 사실대로 말하면 잔소리를 그득히 들을게 뻔해 살짝 바꿔 말했다. 제형은 원필이 꺼낸 말도 그렇게 많이 들어온 얘기 중 하나겠지 넘기고 원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갈게요, 제인아 인사해야지.
제형과 제인이 손을 잡고 가는 걸 흐뭇하게 지켜본 원필은 조용하게 쾌재를 불렀다. 뭐라도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원필은 제형이 제인의 아빠가 아닌 오빠라는 확실한 사실에 콧노래를 불렀다. 중년의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눈에 띄던 젊은 얼굴.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에 180은 가뿐히 넘는 것 같은 큰 키. 멀리서 볼 때는 꽤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 제형의 첫인상이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낭만적인 말보다는 취향이 남자를 만나 호기심이 생겼다는 말이 어울렸다. 유치원 선생이라는 다소 엄격한 직업 탓에 최근 몇 년간 연애를 못한 탓이었다. 동료 여자쌤들만 봐도 SNS 털리는 건 부지기수로, 프사가 어떻구, 남자친구가 어떻구, 평소 언행이 어떻구 저떻구 학부모에게 지나친 간섭을 듣고 있는데 만약에 남자 좋아하는 게이라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본가에서 유치원이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은 되는 거리인 탓에 자취방을 구해 사는 원필은 동네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근처 지리를 잘 몰랐고 친구라고 해봤자 유치원에서 만난 쌤들 뿐이었다. 그런 원필의 눈앞에 등장한 취향의 젊은 남자. 원필은 제형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흐흥 웃었다. 이렇게 원필은 제형에게 진짜 아빠냐고 묻기도 전부터 제형을 알았다. 통성명과 말 놓는 건 쉬웠고 사석에서의 만남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제형은 친구가 필요했고 마침 또래로 보이는 유치원 쌤을 만났고 접점도 많았다. 만남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원필은 모든 관계에 있어서, 설령 그게 연애와 관련된 관계라 해도 설계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제형이 얼렁뚱땅 쉽게 낚인 바람에 원필의 바람대로 착착 이루어져 갔다. 흐흥. 제형이 형 바보같애. 농담처럼 던진 말에도 발끈하는 반응이 너무 웃기잖아. 그러면 또 흐흥 웃으며 형 진짜 귀엽다. 원필은 덧붙여 말했다. 나 놀리는 거 아니구 다 진심인뎅. 형은 몰라주네. 그 말에 제형은 또 그게 놀리는 거라고 씩씩 거렸다.
“나는 형이 제인이 아빤줄 알았거든.” “왜? 제인이도 나 오빠라고 부르잖아.”
“아닝, 그런 거 있잖아. 아빠가 넘 어려서 일부러 오빠라고 부르라는 사람도 있구.. 주위시선? 그런 거 땜에.”
“아아 뭐.. 그런 사람도 있겠지.”
제형은 원필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으면서 끄덕거렸다. 생각해보니 제인이 아버님이냐고 물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시큰둥하게 얘기를 듣던 제형은 감자튀김을 몇 개 주워 먹다가 콜라를 빨대로 쭉쭉 빨아 마셨다.
“그래서.. 나 고민 많이 했거든.”
“무슨 고민?”
“형이 유부남이면 어쩌지.. 싱글대디랑 연애해도 괜찮을까.. 제인이는 어떡하지 모 이런 고민.”
“미쳤냐?”
“그리고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해도 될까?”
원필이 목소리를 낮추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콜라를 마시던 제형이 원필의 말에 사례가 들려 켁켁 거렸다. 원필은 뒤로 넘어가면서 끅끅 웃어 제꼈다. 으하하학학 형 반응 너무 웃겨. 예상치도 못한 말에 한참을 콜록거리던 제형은 뭐라 대꾸하고 싶지도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김원필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휴지로 입가를 닦은 제형이 팔짱을 끼고 원필을 노려봤다. 제형이 미친놈이라고 한들 째려본다고 한들 원필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굴하지 않고 헛소리를 해댔다. 농담처럼 하면서 쳐다보는 눈이 은근히 진심 같은 게 제일 거슬렸다.
제형은 원필과 말을 놓고 번호를 주고받고 밥을 먹는 다소 신기한 과정에서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이상한 김원필이랑 왜 마주보면서 앉아있지. 왜 햄버거 먹으러 왔지. 모든 상황이 어쩌다보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백 개 던져도 하나를 답하지 못했다. 김원필이 밥 먹자해서 어쩌다보니 알겠다고 했고 얼레벌레 맥도날드로 끌려와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도...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조곤조곤 말하다가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자기 혼자 넘어가면서 웃고 쉴 틈없이 묘한 고백을 해대는 원필은 제형에게 처음 보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제형은 원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저 까맣고 큰 눈에 뭐가 들었는지,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진짜 자기를 좋아하기라도 하는지. 그래서 궁금해 물었다.
“김원필.”
“응?”
“나 좋아해?”
말하고 나니 은근 수치스러워서 고개를 훽 돌렸다. 원필은 깔깔 웃더니 눈물까지 났는지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저렇게 웃을 일이냐고. 금방이라도 못 들은 걸로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심 대답이 궁금했다. 원필은 제형의 속을 꿰뚫어 봤는지 바로 웅 좋아해 라고 대답했다. 제형이 멋쩍게 웃었다. 이런 얘기를 맥도날드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리 이제 갈까? 원필은 얼음을 와그작 씹어 먹으며 말했다. 짧은 시간동안 뭐라 말할지 고민하던 제형은 어어 하고 트레이를 정리했다. 그 후로도 원필은 제형에게 자주 좋아한다 말했지만 다른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일상적인 말을 하듯이, 같이 밥 먹자고 하는 것처럼, 원필이 제형에게 하는 수많은 말 중의 하나 같았다. 어떤 무게도 깊이도 없는. 제형은 그때마다 어떤 말도 떠올리지 못했지만 하지 못한 말이 있는 마냥 숨이 턱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은 없는데 해야만 하는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원필과 헤어지고 나면 항상 뭔가 엉킨 기분이었다. 쉽게 풀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만 하는 말이 뭘까. 제형은 원필과 만난 날이면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고 몇 시간도 못 잔채로 아침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새벽까지 김원필 생각을 하다 잤다.
원필과 자고 온 날도 역시 그랬다. 밤을 새는 바람에 피곤할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입 맞춰오던 김원필 얼굴이 떠올랐고 허리춤을 더듬던 손이 느껴졌다. 아프면 말하라고 거듭 강조하던 배려와 특유의 까만 눈이 아른거렸다. 좁은 침대에 마주보고 누워 원필은 또 웃으면서 말했다. 형 좋아해. 사랑도 해. 제형은 늘 그랬듯이 원필을 쳐다만 봤다. 모든 상황이 아무 이유 없이 의도 없이 벌어진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제형은 속이 울렁거려 모든 말을 토해내고 싶었다. 근데 무슨 말을 해야 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걸 알아내려 하니 말을 만들지도 못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모자란 사람처럼 김원필 생각만 하고 있는 박제형. 베개에 머리를 박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고 데굴데굴 구르며 김원필 생각을 해도 해답은 없었다. 곧 제인이를 데리러갈 시간이었다. 원필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꾸만 형 좋아해 사랑도 해 하던 원필이 눈앞에 있다 사라졌다. 형좋아해사랑도해.. 형좋아해사랑도해.. 형좋아해사랑도해, 좋아해 사랑도 해 나도 좋아해 사랑도 해 몇 번을 입으로 되새김질 했다.
사랑하면 바보가 된다더니 진짜인 모양이었다. 이 쓸데없는 말을 누가 유행시켰는지.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한참 낡은 말이었지만 원필을 대면한 제형은 한철 지난 말을 떠올렸다. 외면하고 지나쳤던 사랑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건 가혹한 일이었다. 제형은 해야만 하는 말이 어디에 가로막혔는지, 사랑보다 멍청한 두려움이 얼마나 버티고 있었는지 한참 생각했다. 발만 담구고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빠졌는지. 망할 김원필, 웃으며 고백하는 김원필. 더디고 더딘 마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김원필. 그런 김원필보다 바보 같은 건 김원필을 사랑하는 박제형. 원필은 우리 뭐먹을까? 따위의 말을 하고 있고 제형은 마음을 토해내고 싶었다.
짜증나는
“김원필.”
내가 멍청해서 잘 몰라 그러는데
“너 나 사랑해?”
나는 사랑을 잘 할 자신이 없는데
“나 너 사랑해도 되는 거야?”
어딘가 삐걱대고 모자라는 바보 같은 사랑을 할 테지만
“나 너 사랑하는 것 같아.”
사귀자 만나자 같은 말보다는 이 말이 더 하고 싶어 나는 너를
“좋아해. 사랑해.”
원필은 제형이 생략한 말은 듣지 못했지만 다 아는 것처럼 웃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개구지게 웃는 김원필. 제형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서 형 내가 맨날 말했잖아. 나 형 좋아한다구. 그리구 나두 사랑해. 이런 말을 눈 깜짝 않고 하는 김원필. 제형은 충동적으로 가까이 있는 원필을 어색하게 껴안았다. 어깨에 팔을 올리고 목 쪽으로 굽힌 것도 안았다고 할 수가 있나. 그렇지만 제형은 원필을 안았다.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원필의 심장 소리는 쿵쾅쿵쾅. 제형은 진짜 사랑하는 게 맞나보다 싶어 자기보다 작은 원필을 가까이서 내려다봤다. 올망졸망 까만 눈동자 더럽게 잘생긴 얼굴 순진한 척하는 표정하며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사랑스러웠다. 한꺼번에 토해 낸 마음이었지만 계속해서 토해내고 싶은 게 생기는 기분이었다. 자꾸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좋아해 사랑해 좋아해 사랑해 좋아해 김원필 사랑해 김원필 같은 낯간지러운 말을 하루 종일 귀에 대고 속삭이고 싶었다. 제형은 그제서야 원필의 숱한 고백을 이해했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김원필. 정말 바보 같은 김원필. 그리고 그런 김원필보다 바보 같은 건 김원필을 사랑하는 박제형.
사랑도 금물
함부로 빠져들지는 마
그러나 너는 결국 말을 듣지 않고
어느 누군가를 향해서
별이 되어주러 떠나게 될 걸*
* 언니네이발관 – 인생은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