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또 | 지랄 ♥ 지랄
psychos
ㅗ
아무리 그래도 기타로 패는 건 좀 아니지않냐?? 형 넌 씨발 진짜 또라이새끼고 폭력적이고 정신적 육체적 손해배상비 존나청구할거고 다시는 내 얼굴 볼 생각하지마라 11:23
김원필 카톡에 박제형 인상 팍 쓰고 핸드폰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카톡인데 어째 얘 떽떽대는 목소리 들리는 기분이라 괜히 귀 한 번 만져보고 한숨 쉬었다. 기타로 패는 건 좀 오바였나. 뭐가 오바야. 김원필 하는 짓이 더 오바지.
기타로 왜 팼나요?
이번에 만든 노래 어떻냐고 김원필한테 들려줬다. 물론 이번 내 노래 매우 우울하고 마이너하기는 했다.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근데 얘가 싸가지없게 건성으로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별로라고 툭 던지는 거다. 집중해서 들었으면 몰라. 집중도 안 하고 손톱이나 틱틱대다가 별론데요? 딱 한마디 하면 열이 안 받어? 그리고 불현듯 요즘 이새끼한테 노래 들려주면 맨날 성의없이 듣고 성의없이 피드백 해줬다는 게 생각이 났고, 갑자기 또 이 개새끼 같이 동거하자고 지가 먼저 말했으면서 요즘 자꾸 설거지 안 하는게 떠올랐으며, 여러가지 이유들 한번에 떠올라 갑자기 빡이 확 쳐서 지랄을 했고 거기에 김원필 대답이 싸가지 매우 상실하여 기분을 더더욱 망쳤고 때마침 내가 기타를 들고 있어서......
“별론데요?”
“아 그래? 너 근데 설거지 안 했더라?”
“...예?”
“설거지 안 했다고. 미친 거지 너?”
“오늘 당번 형인데요? 나 월수금토 형 화목일, 오늘 목요일이라 나 아니라 형인데요.”
“너 저번에 금요일날 술처먹고 들어와서 청소 내가 했을 때, 아니 잠깐만. 그래 금요일 얘기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너 쓰레기통 애들이랑 그만 좀 어울려다녀. 밴드 네임부터 쓰레기통 개 좆구린데다 음악도 허접인데 왜 같이 노는 거냐?”
“형... 지랄을 할 거면 한가지 주제로만 해요.”
“what? 지랄은 나가 하는 게 지랄이고”
“내가 뭐? 형 니가 먼저 노래 어떻냐고 물어봤잖아, 근데 구리길래 별로라 했더니 갑자기 너 왜 설거지 안 하냐고 뭐라 해. 또 쓰레기통 애들이랑 다니지 말래. 근데 잠깐 이건 억울해 나도 걔네랑 안 다니고 싶은데 걔네 레이블은 쓰레기장 아니고 은행 돈 창고잖아. 콩고물 얻어먹을라고 하는 내 음악에 대한 사랑도 모르고 지랄하는 거 그거 안 될 짓이거든요?”
“그게 왜 음악에 대한 사랑이냐? 돈 보고 사람한테 접근하는 속물 십새끼지?”
“아무튼 씨발 지금 내가 형 니 노래 별로라고 해서 지랄하는 거잖아요. 뭐 겨우 별로라고 한 거 가지고 그래? 되게 순화해서 말해준건데? 진짜로 말해줄까? 형 이번 노래 졸라 우울하고 마이너하고 내 스타일 아니고 가사 개구린데다가 가사 존나 삼십일년동안 지하실 사는 남자가 쓴 거 같애요. 뭐 더 말해줘? 어?”
“아아 그래? 내 가사가 왜 우울할까? 니가 섹스를 못 해서라고는 생각 안 해봤음?”
“허,... 뭐라고?”
“믿기 싫겠지만 사실이야. 삼십일년동안 지하실 산 남자가 섹스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성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 같냐고. 난 심지어 애인도 있는데 느낄 수가 없는 점에서 내가 더 우울할 수 밖에 없지. 그래서 행복이란 내게 오르가즘 같네 남들 다 느낀다는데 나는 느낄 수 없는게 라는 가사를 쓰려다가 말았다고, 김원필 널 위해서. 너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그런 나한테 왜 이렇게 지랄이야?”
“그건 핑계죠, 전 형같은 사람 만나면서도 음악 잘 하고 있는데요? 만나는 사람 트집 잡으면서 자기 음악의 구린 이유를 대는 거 만큼 비겁하고 추잡한게 어딨습니까? 예?”
하는 말 마다 따박따박 지지도 않고 깝치길래 너무 열이 받아서 때마침 들고 있던 기타 들어서 김원필 팔뚝 부근 내리쳤고 걔 허연 팔뚝 기타줄로 긁혀 상처나더라. 그거보고 사과도 안 하고 맹하니 있으니 김원필이 작게 욕 내뱉고는 후드집업 챙겨 문 쾅 닫고 집 나섰다.
그리고 한시간 뒤에 저 카톡이 온거고 집에 혼자 남은 박제형 한숨 푹 쉬고 작은 2인용 소파에 풀썩 누웠다.
공연 뒤풀이에서 처음 만났었다. 웬 미친놈이 다같이 회식을 하자길래 썩은 얼굴로 따라나섰다가 거기서 김원필이랑 눈 맞았다. 박제형 곧 뒤질 것 같은 얼굴로 제 앞에 놓여진 공기밥이나 깨작대고 있었는데 그 앞에 똑같은 표정으로 젓가락으로 그릇이나 툭툭 치고 있던 김원필과 눈 마주쳤다. 서로 웃음터지는 바람에 또 몇마디 주고 받다가, 우리 나갈래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나와 담배피는 박제형 옆에서 콜록콜록 기침하면서도 그 옆에 꼭 붙어 서있더라. 귀여워서 웃으니 지도 민망했는지 작게 웃었다. 그게 3년 전이다. 아마 만난지 5개월정도 지났을 때 까지는 잘 지낸 거 같은데, 그 뒤로는 맨날 싸웠다. 맨날 싸우고, 섹스하고, 화해하고 반복..... 이럴 거면 집 합치자는 김원필의 제안으로 동거 시작했다. 평생 안 헤어질 거 같아서 그랬다. 기울어져서 맨날 아슬아슬한 관계지만 절대 무너질리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근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이럴 거면 왜 사귀나 싶어져서. 이렇게 맨날 싸우고, 욕하고, 어쩌면 김원필 이미 나 말고 다른 애 사귀고 있는 걸지도. 걔는 아무래도 잘생겼으니까......
...갑자기 존나 짜증나네. 걔는 성격도 더러운게 얼굴도 더러우면 얼마나 좋냐? 김원필이 못생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엔 얼굴을 때려야지 생각했다. 얼굴 못 들고다니고, 나 아니면 아무도 안 만나주게 만들어야지. 근데 그럴리가. 아니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건데. 근데 걔는 얼굴 못생겨도 인기 많을 거다. 재수없는 새끼. 은근히 다정한 것도 짜증나. 헤어질까 생각한 거 취소. 김원필이 나 말고 다른 새끼 만나면 속이 뒤틀려서 제 명에 못살지도 모른다.
제형이
어디야 너 11:40
놀이터 그네에 걸터 앉은 김원필이 박제형 카톡에 한숨 푹 쉬었다. 요즘 박제형이 만드는 노래들 전부 우울해서 그게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서 요즘 유독 더 짜증내고 노래도 건성으로 듣고. 지기는 싫어서 말대답 따박따박 하면서도 어딘가 쿡쿡 찔렸다. 그렇다고 이 전에는 안 싸웠다는 건 또 아니고. 사귄 뒤로 어째 매일 싸우기만 하는 거 같다. 형도 별로 행복해보이지도 않고...... 김원필 결국 코 한 번 킁 먹고 느릿느릿하게 제형에게 답장했다.
ㅗ
형 우리 헤어질까? 11:58
제형이
지랄말고 어딘지나 말하셈 12:00
이 형 뭐야? 헤어지자고 했는데 뭐 이렇게 답장해. 근데 그게 또 너무 박제형 같아서 김원필 결국 픽 웃었다.
ㅗ
나 싫으면서 12:04
제형이
어 너 존나 싫어서 밖에 내보내고 싶지않음 너랑 사회랑 인간들이랑 거리두기 하고싶음 그럴라면 내가 너 데리고 살아야됨 그니까 어디냐 너 헤어질까 이딴 소리 하지말고 12:06
ㅗ
ㅡㅡ... 놀이터 12:07
제형이
움직이면 ㄷㅈ 12:07
박제형 카톡에 ㅇ 하나 보내고 핸드폰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처음 지금 사는 곳에 왔을 때 집 근처에 놀이터 있어서 좋다고 얘기 했었다. 이사 온 지 초반에는 나름 매일 밤마다 놀이터 와서 그네도 타고 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마지막으로 박제형이랑 놀이터 간 게 아마 작년 말인가. 왜 이렇게 금방 변했을까. 왜 이렇게나 자주 싸울까. 우린 왜 이렇게나 자꾸 불안해하는 걸까. 왜 자꾸 가버릴까봐 무서운 걸까.
5분 정도 지났나, 박제형이 뛰어온 얼굴로 놀이터 앞에 도착했다. 앞머리 다 흐트러진 주제에 처음부터 걸어온 척 슬리퍼 질질 끌며 설렁설렁 오는데 그게 웃겨서 바람빠지는 소리내며 작게 웃었다. 박제형 지도 민망했는지 왜 웃냐. 말하며 킥킥 웃는다. 그 뒤 박제형이 원필이 옆에 그네에 털썩 앉았다. 뭐라 말 한마디 없이 대신 하늘 올려다 보길래 김원필도 그냥 아무 말도 걸지 않고 박제형 옆 얼굴 가만히 쳐다보다 따라 하늘 올려다 봤다. 눈도 작은 주제에 그 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걸지도 몰랐다.
“야”
“왜요”
“화해하자”
“...어차피 우리 또 싸울거잖아”
“그럼 너 나한테 잘해 그럼 안 싸워”
“형은요?”
“나는 어차피 지금도 너한테 잘해”
“...아 그리고 형 아까 나 섹스도 못한다면서요”
“ㅋㅋ 뭐냐? 신경쓰이냐?”
“...네”
“야 너 귀엽다. 뭐, 그래... 아냐 아까는 거짓말이었어. 너 잘해. 우리 원필오빠 섹스 머신이ㅈ”
“아 쫌 토나오게 그딴 말 하지마요”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냐?”
“누가 그래요? 누가 좋아한대요. 형 예전에 사겼던 새끼들이 그런 거 시켰어요? 그 씹새끼들 누군데요”
“하하 아니 내가 시켰어”
“뭐?!”
“농담이야. 그럼 우리 화해한 거다?”
박제형 나이 괜히 먹은 거 아니라고 능구렁이같이 너무 잘 넘어간다. 이러다간 또 화해하고 나중에 또 싸워서 저 형 고생시키겠다 싶었다.
“...나랑 사귀면서 행복하지도 않잖아.”
“원필아”
“왜요...”
“맞아 너 때문에 안 행복한 날도 있어. 근데 니가 옆에 없는게 제일 안 행복해. 넌 내가 옆에 없으면 어떨 거 같은데?”
옆에 두고도 불안해서 싸운다. 옆에 두고도 이사람을 다 가진 기분이 들지 않아 싸웠다. 옆에 없으면 어떨 것 같기는. 성격 파탄자 돼서 형 말고도 아무도 내 옆에 없을 걸. 근데 그건 나고. 형은, 형은 멋있고 존나 간지나는 대다가 맨날 노래로 인간들 꼬셔대니까 나 말고도 사귈 수 있을텐데. 대체 왜.
“울지마, 집에 가자.”
“혀 혀엉은 진짜 짜증나요 알아요?”
“그래서 싫어?”
“아니 안 싫어 짜증나 짜증나게 안 싫어”
진짜 짜증나는데 너무 좋아. 영원히 못 싫어할 거 같아서 짜증나. 그네에서 벌떡 일어나서 박제형 앞에 섰다. 눈물 범벅 된 얼굴 소매로 벅벅 닦아내고 박제형 입술에 입 맞췄다.
지랄 ♥ 지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