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거 | 불지옥 청춘

weirdos and fools

 

 

 

종교 관련 이야기가 저급하게 나옵니다. 불편하신 분들께서는 피해 주세요.

 

 

 

시골에선 모름지기 작은 변화도 눈에 크게 들어온다. 뭐 지붕 색을 바꿨다든가 누가 어딜 들어갔다든가. 사실 지붕 색을 바꾸고 누가 어디 합격했다는 얘기는 따지고 보면 예전의 장원급제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변화라고 해도 무방했으나,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지역의 특성상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마을에 웬 컨테이너가 몇 개 들어서더니 그 위에 벌건 십자가 하나 척 박고 섰다. 믿는 거라곤 기상청 날씨와 자기 자식들이 다인 사람들에게 그 십자가는 뭔가 한없이 무거웠다. 갑자기 웬 종교가 들어서는가. 두루두루 널리 하느님의 말씀을 퍼뜨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느님은 무슨 개뿔. 몇백 년 전만 해도 이런 발언은 신성모독이라며 불구덩이에 던져졌을 테지만 지금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기라 원필이 불구덩이로 던져지는 일은 없었다. 천만다행이네.

 

 

 

다음날 학교를 가니 안 그래도 떠들썩한 애들이 교회 애기로 더 떠들썩했다. 애초에 애새끼들이 몇 없으니 그거 몇 마디가 교실 채우는 것은 쉬웠다. 야 김원필. 또 뭐. 또 누구 따먹는 얘기면 재미없으니까 관둬라. 아니 그거 아니고 교회 갈 거냐고. 아까 교문에서 막 그 뭐시냐. 오라고 하는 거 뭐지? 전도 병신아. 아 씨발 그래 전도. 근데 병신이라고 할 것까지 있냐? 염병 적당히들 해. 김원필은 1교시 끝나고 온 탓에 어떤 상황인지도 몰랐다. 죄송해요 선생님 엄마가 밭일 잠깐 도와달라고 하셔서 열심히 돕다가 그만. 출석부로 대가리 한 대 맞고 와서 피곤하니까 개소리 그만. 이번엔 뭐 때문에 늦었냐. 잡초 뽑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등신 새끼.

 

 

 

아무튼 피곤한 김원필을 두고 주변의 아이들은 그 빨간 십자가 얘기 줄창나게 했다. 지겹지도 않은가. 야 고거 들었냐. 뭔데. 거기 교회 사람들 다 예쁘다더라. 지랄 예쁜 사람들이 뭐 좋다고 여길 오냐. 우리 아빠가 봤다고 했거든. 아 아버님 죄송합니다. 김원필은 결국 벌떡 일어섰다. 아 교회 얘기 그만들 하라고옥. 하려거든 내 옆에서 하지 말라고오오. 와 뭐여. 김원필 자리에 안 앉어? 마침 수업 막 시작할 시간이라 교실 앞문 열고 들어오던 담임이 원필에게 소리쳤다.

 

 

 

놀 거리 부족한 아이들은 아무래도 학교 끝나고 그 교회에 함 가 봐야겠다며 말했다. 아니 니들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깟 문화상품권에 휘둘리는 놈들이었냐. 원필이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 지어 보이자 어떻게 문화상품권 받아낼까 고민하던 아이들은 상처받은 얼굴을 한다. . 우리가 문화상품권이 중요한 걸로 보이냐. 이대로 가다간 심심해서 뒤질 것 같으니까 뭐든 하는 거지. 염병. 방금까지 문화상품권 얘기 존나게 싸댔으면서 개뿔이. 그래서 너 안 갈 거냐? 나 바뻐. 읍내에서, 누구더라. 하여튼 놀기로 했는데. 누구랑. 여자랑? 어 여자랑. 여고 애라고 했거든. 존나 부럽냐? 부럽겠지. 심심해서 교회 가는 애들하곤 차원이 다르다 이 말이야. 그래 씨발 재밌게 처놀아라. 데이트지, 이거는. 그건 니 생각이고요. 끝까지 개같이 구는 건 원필의 친구들이 원필이랑 비슷한 놈들이라서 그런 것이리라. 니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난 간다. 문화상품권 받으면 꼬옥 자랑하고. 으 씨발 한 대만 치고 싶다 김원필. 에베베.

 

 

 

 

불지옥 청춘

 

 

 

 

그런 김원필의 생각을 바꿔 준 것은 다름이 아닌 젊은 목사였는데. 그때의 김원필은 그저 읍내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터덜터덜 걷고 있었는데 여지껏 못 본 청년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얘길 하면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들 사이에 본인 어머니도 끼어 있는 것을 본 원필은 기절초풍했다. 엄마아. 아유 아들. 놀러 다녀오는 길? . . 누구? 인사해. 목사님이시래. 밭일 나갈 차림과는 한참 대조되는 깔끔한……. 암만 봐도 서울놈일세. 눈구멍은 요만한데 그와 대조되는 잠자리 눈을 생각나게 하는 커다란 안경과 살짝 부스스한 머리. 원필에게 파악당한 그의 첫인상은 그닥, 잘생기진 않았다. 정도. 그마저도 내가 더 낫지, 생각하는 것이다. 대신 목 아래로 이어지는 베이지 톤의 멀끔한 차림에 이질감 느낀 원필이 고개만 까딱거렸다. 예에 안녕하쇼. 원필의 불량한 느낌에도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형제님.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한다. 와 씨발 진퉁 서울 말. 김원필은 본인의 사투리가 살짝이지만 부끄러워졌다.

 

 

 

원필이 꿀 목구멍에 다이렉트로 부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니 원필의 어머니가 대신 대답한다. 야는 김원필이구 제 아들이어요. 호호. 김원필은 안 그래도 팍팍 풍기는 이질적인 느낌에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는데 와중에 자신의 어머니가 생전 들려주지 않던 웃음소리를 들려 주는 것에 결국 뒤집어졌다. 엄마 호호가 뭐야 호호가. 한 번도 안 그랬잖아. 아유 얘가 뭐래. 우리 엄마 아니시죠. 원필아 빨리 집 들어가렴. 호호호. 엄마. 무슨 일인데. 아주머니들 가운데에 둘러싸인 멀대같은 목사님만이 말없이 인자하게 웃었다. 새삼 머리 특이하네. 목사님의 머리는 갈색이었으나 드문드문 물이 빠져 있었다. 요즘 서울은 저런 게 유행인갑다. 원필은 다음에 동네 이용원에 가면 꼭 머리를 저렇게 해 봐야지 다짐했다. 잠깐 멀거니 서 있으니 원필 덕에 멈췄던 행렬이 다시 움직인다. 엄마 간다. 네에……. 그 젊은 목사가 말 더 얹는다. 아무튼 원필 형제님, 이번 주 일요일에 교회 한번 와 주세요. 같이 기도해요. 하고 슬며시 조그만 눈 접어 웃는다. 무슨 영문인지 목 뒤가 홧홧하게 달았다. 염병 기도는 무슨. 그 말에 정신 확 깬다. 멀대같이 생겨서는 순 예수쟁이 아니여. 생각하는데 자꾸 눈을 그 이상한 행렬에 두게 된다.

 

 

 

홀렸나?

 

 

 

김원필은 결국 이번 주 일요일에 읍내에서 만나자는 윤희의 약속을 취소했다. 윤희야 내가. 응 원필아. 내가 일이 생겨가지고 일요일에 못 놀 것 같다. 으응 그래애. 윤희는 아주 쿨하게 원필을 보내 줬다. 윤희도 사실은 서울 사람이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를 보낼 일이 없는데. 아무튼. 김원필은…….

 

 

 

학교에 도착해 제 반으로 들어서니 저번에 문화상품권 오천 원 짜리 한 장에 속절없이 휘둘렸던 아이들이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시들했다. 야 니네 웬일로 교회 얘기 안 하냐. 사흘밤낮으로 그 얘기만 하더니. 우리 교회 안 갈 거야. 재미 다 털려가지고.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냐? 졸려 뒤지는 줄 알았잖어. 심각한 내용의 간증들만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원필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간다고 선언하자 다 짜고 치는 것마냥 혀를 내두른다. 야 윤희랑 읍내에서 논다고 했잖냐. 읍내가 다 무슨 소용이야. 나 교회 간다는데 씹새끼들아. 니 접때 우리한테 문화상품권에 미친 등신들아라고 하던 거 다 어디 갔냐? ? 난 그딴 거 필요 없는데. 누가 그딴 거 하나 보고 간댔냐. 긂 뭐 보고 가는데. 그냥 궁금해서 감. 아니 우리가 말했던 거 귓등으로 처들었냐? 존나 지루해. 수업보다 더 지루해. 진짜. 내 부랄 걸고. 니 부랄 돈 주면서 가지라고 해도 안 가질 거라 괜찮. 으 씨발 개새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왼쪽 불알 건 놈의 말이 무색하게 일요일은 빠르게 찾아왔고 김원필은 결국 엄마 따라 교회 왔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데 엄마 따라가면 교회 오는구나. 옛 성현의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 컨테이너로 급조한 것 치고는 의외로 괜찮게 생겼다. 뭐 그래 봤자 그냥 얇은 철벽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걸고 조화로 장식하고. 뭐 이것저것. 아무튼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양반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죽이는 건 그 가운데에 있는 멀대 목사.

 

 

 

"원필 형제님, 오셨네요."

 

 

 

양아치 머리 한 목사가 반갑게 (순전히 원필의 생각임을 알아야 한다) 원필을 맞아 주었다. 근데 그냥 말로 하면 되지 굳이 손을 잡았다. 투박한 원필의 손 위로 얇고 하얀 손이 얹힌다. 반가워요. 헐 씨발. 아랫배가 확 당기길래 조용히 속으로 어머니가 자기 전에 하는 얘기 따라 했다. 아아멘. 주님은 좋겠다. 이런 놈을 데리고 살다니. 원필은 홀린 것이 분명했다. 원필의 표정을 살피던 그가 고개 갸웃했다. 혹시 오늘 몸이 안 좋은데 나온 건가요? 아뇨 괜찮은데요. (존나게) (근데 님 얼굴 보니까 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 것보다. 나 남자 좋아하는 거였나? 저번주까지 윤희랑 놀려고 열심히 공사쳤던 건 걍 구란가? 왜 놀았지. 원필의 어머니에게도 반갑게 인사한 목사는 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종교 좋지. 하하. 손 하나 잡은 것 가지고 천국 다녀온 것 같았다. 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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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안을 부유하는 나른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뭐랄까. 과장 조금 더 보태서 나는 이 목소리 들으려고 태어난 거 아닐까 생각했다. 존나 꼴린다. 김원필의 혈기왕성함은 목소리에도 영향을 받았다. 맨날 앵앵대고 존나게 시끄러운 지 친구들 목소리만 주구장창 듣다 차분하게 주기도문 외는 소리 들으니 색달랐다는 말이다. 내내 기도문보다는 저 앞에 서 있는 젊은 목사에게 시선 고정한 원필은 자신의 앞머리를 아직 자르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머리칼 사이로 몰래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근데 가끔.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는 건지 아주아주 가끔이지만 눈이 마주쳤, 마주쳤나? 모르곘다. 시선이 이쪽으로 머문다는 생각이 들긴 들었는데. 걍 도끼병 말기였다.

 

 

 

어머니가 얘 미친 건가 싶을 정도로 원필은 컨테이너에 매주 출석했다. 마음 같아서는 맨날맨날 출석하고 싶었는데 원래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거란다. ? 저렇게 좋은 걸 일주일에 한 번 볼 수 있다니. 말이 되는가. 아니 근데 그놈의 손 잡는 것 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한테 손을 잡아 주는 것도 아니고 굳이 원필이 가면 원필한테만 또 봐서 반갑다면서 손을 잡아 주는데 왜. 굳이. 그렇게 하시는 거죠? 진짜. 이러면 오해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도끼병에 걸려도 합법 아닌가. (아니다)

 

 

 

원필은 젊은 목사를 따라다니는 마을의 어머니회에 가끔이지만 불쑥 끼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윤희를 비롯한 여고 애들은 완전 뒷전이었다. 목사는 뭐 그렇게 동네에 관심이 많은 건지 자꾸만 여러 집 전전했다. 아니, 집집마다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잿밥에 관심 둔 것일지도 몰랐다. 왜냐면 그 목사가 골목 사이사이 누빌 때마다 손에 뭔가 한가득 들고 동네 돌아다니는 것이 아무래도 꽤 많이 빼다 먹은 것 같았기 때문에. 빼먹은 건지 빼먹으라고 내어 준 건지 진위는 모르지만 어머니가 어제 만들었던 장조림 한가득 든 찬합이 그의 손에 있었다. 미묘한 배신감 느낀 원필이 와 난 한 입도 못 먹게 하더니 저것 때문이었나 봐. 생각한다. 뭐 근데 내가 엄마였어도 아마 바리바리 싸 주고 싶었겠지. 훤칠하니까. (얼굴이 잘생긴 것은 아니다만) 근데 난 줄 게 없으니 나중엔 간을 빼다 주지 뭐. 구미호도 아니고. 원필은 50 퍼센트의 진심으로 간이라도 빼줄 생각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컨테이너로 향했다. 애들이 읍내 나가자고 하는 것도 죄다 퇴짜 놨다. 야 나 바뻐. 바쁘긴 개뿔이 바뻐 씨발. 지나가는 개미가 니보다 더 바쁘겠다. 싸워? , 싸워.

 

 

 

만호가 자기 관자놀이 옆으로 검지 들어 빙빙 돌리며 말한다. 김원필 아주 돌았다. 저 새끼 저거 그 거지같은 컨테이너에 처박혀 있다 보니까 이상한 물 들어가지고 아주. 김원필 가방에 교과서 안 들고 성경 들었잖아. 미친놈. 그게 교과서냐? 어어 교과서다. 와 진짜 개미친놈. 교회에 미쳤네. 문화상품권 받으니 좋으냐? 만호의 발언은 그저……. 소싯적의 본인 모습 떠올리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문화상품권 한 장 그거 받아 보겠다고 원필보다 더 혈안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누가 문화상품권에 교회 간다 그랬냐? 나 받은 적도 없……. 됐어 그냥 우리끼리 갈 테니까 교회에서 존나 지지고 볶고 떡을 쳐라 씨발. 어 진짜 떡 칠 거임. 미친 새끼 아냐 이거? 김원필이 농처럼 뱉은 말은 진심이었다. 95 퍼센트 정도. 나머자 5 퍼센트는 본인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이었고. 양심. 그래 교회를 가는데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 하느님의 어린 양인 척도 해 보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

 

 

 

근데 말야. 나 왜 그 목사한테 발정하는 걸까. 씨발.

 

 

 

하느님의 어린 양 억지로라도 자처하고 싶었던 원필의 기도는 터무니없고 맹랑하다. 지금 저기 허름한 연단에서 기도합시다, 하는 저 사람 딱 한 번만 따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느님. 동성애는 천벌받을 일이라고 했으나 하느님 앞에서 사랑의 종류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니 한 번쯤은 저에게도 자유롭게 누군가를 따먹을 권리를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일지도 모르지만 한 번만, 이하 생략. 대체 누가 신에게 이딴 말로 도전할 수 있는가? 김원필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과 섹스에 적당히 미친 혈기왕성 열아홉 고딩만 가능한 일이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모 만화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생각하는 게 그대로 다른 사람들한테 들렸다면 김원필은 매장 각이었다. 아직 그렇게 발전하지 않아서 진짜진짜 다행이다. 원필은 꼭 잡아 쥐고 있던 손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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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필이 한동안 그 컨테이너에 출석을 해서인지 혹은 다른 곳은 죄다 탈탈 털었는데 아직 이 집에만 뭔가 빼먹을 게 남아 있는 건지 그 목사는 뻔질나게 원필의 집을 드나들었다. 학교 마치고 다녀왔습니다, 하면 엄마가 그 어색한 웃음으로 웃는 소리가 집 담 넘어서 들리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원래는 집에 있으면 아들 다녀왔어? 얘기라도 하는데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할 때도 있다. 아들 취급이 아주 지나가는 개만도 못하다니. 이럴 수 있나. 꿀떡 몇 알 사이에 두고 무슨 말이 그리도 즐거운지 모르겠으나 엄마의 호호호, 소리 듣고 있자니 복장 터졌다. 아 왜 저기에 낄 수가 없는데. 끼고 싶었다. 이유는 없었다. (원필은 애써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떡이나 좀 먹등가 아들램, 하면 그제서야 쭐쭐 따라갔다. 그럴 때마다 열아홉이 아니라 아홉 같기도 했다. 그럼 그놈의 젊은 목사는 또 사람 홀리는 웃음 지으면서 안녕하세요, 형제님. 한다. 와 존나. 원필은 답지 않게 쭈뼛거렸다. 가오 빠져.

 

 

 

어머니가 되게 쾌활하시네요, 뭐 이런 얘길 하던 목사님은 고민 상담 중이었다며 말을 덧붙인다. 목사가 그런 것도 하나요? 그냥 기도만 하는 거 아니었냐며. 근데 엄마가 뭔 고민이 있어. 날마다 어떻게 해야 잡초를 쉽게 뽑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 아니냐고. 어어머 얘가. 떡 두어 개 집어 입에 넣은 원필이 자리 피했다. 아 정말. 가까이서 보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네. 원필은 금사빠였던 모양이다. 근데 대상이 하필.

 

 

 

아무튼 집이랑 학교 오가면서 자주 만났다. 마을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 얼핏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순진한 마을 어르신들 꼬셔서 뭘 하려고. 원필의 속을 읽었다는 듯, 그는 또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다 같이 좋으면 좋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왜. 원필은 목사가 몇 번 더 집에 다녀가는 것을 보고, 꿀떡 몇십 개를 입에 넣고서야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박제형. 이름 한번 기깔났다.

 

 

 

그는 나름 오며 가며 자주 본 원필에게 친근감 느꼈는지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를 원필에게 해 주곤 했다. 근데 왜 저한테 이런 얘길 하세요. 사실 따지고 보면 제형보다 원필이 이미 마을의 생리 다 꿰고 있을 터인데 머리도 비상하시면서. 다 아실 만한 분이 굳이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내어 준 절편을 제형과 마루에 앉아 나눠 먹으면서 넌지시 질문 던졌다. 그러자 제형은 또 해사하게 웃으면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웃는지 모르겠다고) 그냥 재밌잖아요. 이런 얘기로도 대화를 할 수도 있고. 그리고 여기 마을의 원필 씨 또래 애들은 제 얘기 잘 안 들어 주거든요. 그럴 만도 하지 지루하니까. 사실 목사님이 그렇게 안 생겼담 저도 지루해서 피했을 텐데요. 속으로만 말했다. 찐 하느님이 본다면 천인공노할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자주 붙어먹었다. 김원필이 학교에서 실실 쪼개고 있으면 김원필 주변에 있는 놈들은 그 목사가 또 김원필한테 무슨 짓을 했구나 생각했다. 그게 무슨 짓인진 정확히 알 수 없어도……. . 뭔데. 왜 그딴 눈으로 보냐? 아니 니 기분 나쁘게 쪼개지 말라고. 이젠 빠개는 것까지 허락받고 빠개야 한다니 이게 무슨. 징그럽게 그러지 말라는 말이지. 투닥거리다 보면 하교할 시간이었고 하교할 시간엔 열에 아홉은 박제형이 원필의 집에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하고 많은 집 중에서 여기로 오는 거냐고요. 박제형은 김원필이 뒤집어질 만한 말을 했다. 관심 있어서요.

 

 

 

? 관심이요?

 

.

 

그그근데요.

 

, 형제님.

 

뭐에……. 관심이…….

 

 

 

형제님이죠. 젊은 친구들 중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친구들이 드물거든요. 본인도 존나 어리게 생겨서는 젊은 친구라고 하니까 연배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을 뻔했다. 그러니까 저도 열심히 노력해야죠. 그놈의 존댓말 안 하면 안 되나. 아니 그리고 관심의 방향이 잘못됐어요. 원필은 당장이라도 제 얄팍한 신앙심 말고 제 낭심으로 화살표 돌리고 싶었다. 그렇게 돌린다고 돌려지면 목사 자격 박탈 뭐 그런 걸까 싶어서 아무 얘기도 못 했지만. 뭔가 생각 많아 보이는 김원필을 두고 박제형은 웃기만 했다. 아 존나게 자빠뜨리고 싶었다. 하느님 날 보고 있다면……. 안 보는 게 분명했다. 성경에선 남자가 남자 좋아하는 것 가지고 뭐라고 안 하던데. (성경을 전부 뒤진 것은 아니지만 대충 감으로 찍었다) 제가 하다가 복상사로 뒤져도 좋으니 한 번만요. 저 사실 아다란 말이에요. 만호가 맨날 입만 처털더니 꼴 좋다 개새끼, 하는 것 같았다. 와 혈압 올라.

 

 

 

결국 저녁까지 먹은 목사님은 밤이 깊어가도록 떠날 생각을 않았다.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모르겠네. 엄마는 그저 우리 아들을 잘 이끌어 달라는 말만 하고 있고. 딸기 씻어서 몇 알 겸사겸사 넣고 있었는데, 뒤로 짚고 있던 오른쪽 손 위로 맨들맨들한 손가락이 닿았다. 뭔가 짚으려다 잘못 스친 것 같아 가만히 있었더니 맨들하고 얄쌍한 손가락이 투박한 손 사이 느릿하게 헤집는다. , 뭐야. 괜히 놀라서 흠칫 빼냈더니 옆에서 시선 느껴져서 고개 슬쩍 들었다. 뻘건 딸기 입에 넣고 씹으면서 원필을 보고 있던 조그만 눈이 또 슬그머니 접혔다. 딸기 물이 든 입술 역시도 뻘갰다. 아니 시선이 왜 그렇게. 원필은 또 가오 빠지게 당황한 티 팍팍 내면서 말했다. , 뭐 하시는 거……. 건데요. 딸기가 참 맛있네. 그쵸? 자주 와야겠다. 뭘 자주 와요…….

 

 

 

딸기 먹으러요.

 

…….

 

, 그럼 너무 염치없나?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형제님.

 

…….

 

 

 

좆됐다. 원필은 뒤로 짚고 있던 손 빼서 사타구니 사이에 뒀다. 섰나 봐.

myoskin